신명나눔 소개

Ⅰ. 신명나눔 설립목적

  • 1도시형 풍물굿 - 서울풍물재수굿
    사단법인 신명나눔은 2003년, 사라져가는 마을굿을 도시에서 전승하고자 설립한 전통문화예술단체입니다. 이를 실천하고자 매년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서울풍물재수굿'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 2전통예술의 보급
    사단법인 신명나눔은 전통예술, 특히 풍물굿의 '신명'과 '대동'의 정신을 다양한 장르를 통해 교육하고자 설립한 전통문화교육단체입니다.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2010년부터 '풍물대학'을 운영하고 있고 자체적으로 정교한 교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풍부한 전문 강사진이 교육하고 있습니다.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사물놀이 풍물캠프를 열어 전국의 풍물꾼들이 학습하고 있습니다.

  • 3나눔활동
    사단법인 신명나눔은 전통예술인들이 먼저 세상에 기여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설립한 전통예술인 나눔단체입니다. 공연활동으로 나눔을 실천하고자 매년 '신명나눔굿'을 기획공연하고 있고 매주 사물놀이 토요상설공연을 자체 연습실 겸 공연장에서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필요한 곳에 찾아가는 공연지원 활동과 재정지원 활동을 겸하고 있습니다. 

Ⅱ. 주요활동분야

  • 1전통 타악공연 (풍물굿+사물놀이)
    매주 토요일 '사물놀이 토요상설공연'을 2010년부터 지속하고 있고, 매년 서울시민과 신명나눔 후원회원을 위한 '신명나눔굿'을 공연하고 있으며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서울풍물재수굿'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2풍물대학 / 풍물캠프 운영
    사물놀이, 무속음악, 반주에 걸쳐 다양한 전문 교육강사를 통해 일반인 교육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배출한 학생들로 구성된 일반인 동호인 모임도 구성되어 있으며 신명나눔과 더불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4회 4박5일 일반인 사물놀이 풍물캠프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 3나눔활동
    신명나눔은 전문성을 갖춘 사물놀이패가 3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들 사물굿패는 초청공연과 재능나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 활동가들과 연계하여 교육 및 공연을 지원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재정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신명나눔은 기획재정부 지정 기부단체입니다.


신명나눔

신명이 곧 나눔입니다.

신명은 신(神)과 명(明)의 합성어입니다. 신(神)은 혼, 얼을 뜻하고 명(明)은 밝히다, 드러내다를 뜻합니다. 곧 신명은 얼을 밝히고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바람의 성품이 부는 것이고 비의 성품이 내리는 것이라면 신(神)의 성품은 밝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神)은 우리의 본질을 말하고 명(明)은 우리의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명은 우리의 이름이자 우리의 성품을 말합니다.

신은 얼이며 얼은 우리의 정수입니다. 얼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더 높은 차원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태어남을 의도하지 않았고 성장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소화에 관여하지 않고 근육의 움직임을 모른 채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존재자에 의해 살려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요한 착각입니다. 얼이 우리를 살게 하고 있습니다. 얼은 생명과 의식의 다른 이름입니다. 생명이 이 모든 활동을 일으키고 이 모든 활동은 의식에 의해 인식됩니다. 우리의 본질은 바로 얼, 즉 생명과 의식입니다.

얼은 드러남이 성품입니다. 생명은 자신의 몸을 돌봅니다. 의식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생명과 의식의 근원적인 사랑이 우리를 드러나게 합니다. 우리를 존재하게 합니다. 드러난 모든 것은 얼의 사랑과 나눔 덕분입니다. 신명이 곧 나눔입니다.

도움을 넘어 나눔입니다.

도움은 도와준다는 말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것들에 한시적으로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희생이 불가피하고 최소한의 영적 보상이나 자기만족적인 보상에 대한 기대가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나눔은 누구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않습니다. 나눔은 존재함으로 돕습니다.

존재함이 나눔입니다.

깊은 산중의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꽃도 생명을 다해 피어납니다. 피어남으로 숲을 아름답게 하고 향기롭게 합니다. 해는 존재함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돕습니다. 해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그 존재함이 나눔입니다. 비가 땅을 적십니다. 비의 도움으로 모든 생명이 성장합니다. 비는 도움 속에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자만하거나 평판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존재함으로 전체 나눔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나눔은 나누어줄 것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존재함으로 세상에 기여합니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으로 자신의 판단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므로 존재를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존재로 삶을 꾸리는 것이 참다운 나눔입니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꽃입니다. 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우주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꽃이며 향기입니다. 우리를 추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아름다운 꽃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힘없이 연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들이 원인입니다. 판단 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나눔은 나누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나누어 주려면 나누어줄 것을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먼저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 아름다움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나눔은 대개 자원봉사나 물질적인 도움을 떠올리지만 이것이 나눔의 진면목은 아닙니다. 고귀한 사람이 비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구분과 분리와 판단이 참다운 도움을 가로막습니다. 참 나눔은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무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내면은 해결해야할 욕망과 두려움이 가득 합니다. 이것을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유일한 도움의 수단인 우리 자신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세계의 슬픔을 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봅니다. 욕망과 두려움에 이끌린 우리들이 만든 세상입니다. 우리의 욕망과 두려움을 종식하지 않고서는 세계의 슬픔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세상을 만든 주범입니다. 우리 자신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습니까? 나눔은 바로 욕망과 두려움에서 해방된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자유가 아름다움이며 사랑이며, 이 사랑은 아무리 나누어주어도 동이 나지 않습니다.

나눔의 균형 감각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고 걱정하지만 자신의 부를 나누려 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돕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사실 우리는 단 한 사람이라도 정말로 도와준 경험이 없습니다. 더 이상의 필요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와 개인을 도우려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눔은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먼저 도우려는 자신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우려는 세상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은 신명이며 세상은 신명 안에 존재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하는 것이 곧 자신 안에 있는 세상을 돌보는 일입니다. 세상은 생명력의 활동이요 의식의 반영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나는 별개로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나를 통해 세상이 드러나기 때문에 나와 세상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세상과 나는 하나라는 관념을 뿌리 깊게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대동입니다. 이 관념이 다른 거짓된 관념을 물리쳐 주고 종국엔 관념 자체를 허뭅니다. 나와 다른 대상이 존재하면 돕는다는 관념이 생기지만 그것이 하나이면 자신을 돕는 것입니다. 돕는다는 관념은 칭찬과 존경, 영적인 이득, 자기만족 등의 그림자를 만들지만 그러한 관념이 사라지면 모든 행동이 순수해지고 손짓 하나도 나눔이 됩니다.

'갖기'에서 '주기'로

신명이 곧 나눔입니다. 신명은 우리의 얼인 의식과 생명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 드러냄이 나눔입니다. 존재 자체가 온 우주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우주에서 필요한 것들이며 존재함으로 전 우주에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신명에 거하는 자가 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명에 거하면 모든 생명이 신명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에겐 차이와 차별이 없습니다. 그에겐 무엇을 나누어준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주었다는 관념, 나눔을 했다는 관념은 착각입니다. 그 착각이 있기 때문에 받으려고 하고 기대한 만큼의 보상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실망합니다.

세상을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는 역사적으로 실패했습니다. 행복을 주려고 한다면 실패할 것입니다. 오늘 행복을 주었는데 내일 그들이 불행해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행복을 주기 위해 분주하다가 결국 그것에 묶여 버리게 될 것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행복해야 합니다. 꽃이 피어나면 자연스럽게 향기가 퍼져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이제 이기적인 욕망의 흐름을 바꾸어야 합니다. ‘갖기’에서 ‘주기’로 말입니다. 주기를 습관화하면 준다는 관념까지도 씻겨나갈 것입니다. 먼저 주세요. 항상 주세요. 빈 곳에 주세요. 살짝 주세요. 주고는 잊으세요. 주는 일, 자신을 밝히는 참 좋은 일입니다.